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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밥은 언제 먹나요” "먹지 않아야 싸지 않는다”···연극으로 위로받은 간호사들. 경향신문.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1.11.17
  • 조회수 : 393

(2021.11.10) “밥은 언제 먹나요” "먹지 않아야 싸지 않는다”···연극으로 위로받은 간호사들. 경향신문.

 

보건의료산업노조, 조합원 대상 공연
간호사 자신도 간호받지 못하는 현실
기본적 욕구 외면해야 하는 노동에 주목
“디테일하게 표현” “유쾌하면서도 슬퍼”

 

“밥은 언제 먹나요?” “시간 나면…. 먹지 않아야 싸지 않는다!

7년차 간호사 윤주는 신규 간호사의 질문에 이같이 답한다. 불규칙적인 3교대 근무와 4시간 자고 또 출근해야 하는 ‘지옥의 근무표’ 탓에 좀비처럼 일한지 오래다. 짬이 나면 컵라면이나 도시락을 들고 좁아터진 비품실을 찾는다. 제일 힘든 건 환자를 제대로 간호할 수 없게 만드는 현실이다. 의사 진료를 보조하는 PA간호사 성주는 3교대 근무를 하진 않지만 시도때도 없이 ‘콜’을 받는다. 처방, 드레싱 등 의사 업무를 대신하며 불법의료에 내몰린다. 그가 한 일은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병원의 유령 같은 존재다.

6년 전 메르스 현장을 지킨 간호사 경주는 코로나19 전사가 됐다. 메르스 종식 후 인터뷰에서 “많은 감염병을 대비하기 위한 프로토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병원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마스크 한장 지급받지 못하고 코로나19에 감염된 간병노동자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다. 남의 일이 아니다. 간호사인 자신도 간호받지 못하는 노동환경에 처해 있다.

지난 9일 극단 낭만유랑단의 연극 ‘섹스인더시티’가 열린 경기미래교육 파주캠퍼스 콘서트홀. 연극은 2021년에도 식욕, 배변욕, 수면욕 등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외면해야 하는 간호사의 노동에 주목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경기지역본부가 공가 인정을 받는 ‘조합원 하루교육’의 일환으로 행사를 준비했다. 아주대병원·일산백병원·의정부의료원 등 경기 지역 병원의 노동자들이 한칸씩 띄운 채로 객석을 메웠다. 노조는 다음달까지 파주, 수원, 안양에서 조합원 대상 공연을 총 12회 연다.

강의가 아닌 연극을 준비한 건 ‘코로나 우울’ 때문이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 2~3월 보건의료노동자 4만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서 다수는 일상생활(78.7%)과 심리상태(70.6%)가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비슷한 시기 일반시민 2000명을 대상으로 한 경기연구원 조사에서 55.8%가 ‘코로나19로 인해 불안·우울하다’고 답한 것에 비하면 의료노동자들의 심리상태가 더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백소영 노조 경기지역본부장은 “보건의료노동자들은 압박감과 책임감에 어디 나가는 것조차 어렵다. 코로나19 의료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심리치료를 받을 시간도 없다”며 “하루라도 여유를 갖고 문화생활을 하면서 서로 공감하고 격려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연극 ‘섹스인더시티’는 2016년 초연 당시 부적절한 관행인 임신순번제와 태움(직장 내 괴롭힘), 메르스 문제를 부각했으나 지금은 노동 자체와 코로나19가 중심이 되도록 변주했다. 작품의 실제 주인공인 간호사들 앞에서 공연한 건 처음이다. 연출을 맡은 송김경화씨는 “간호사들이 쓴 책과 통계 자료 등을 기반으로 리서치를 했다”며 “간호사들이 누군가 내 이야기를 하고 있고 나의 노동에 귀기울이고 있다는 것에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간호사의 노동에 귀기울이다

자신보다 무거운 환자의 체위를 능수능란하게 바꿔주는 장면, 신규 간호사가 “최선을 다하겠다”며 당차게 인사하는 장면에선 웃음이 터져나왔다. 주먹구구식으로 코로나19 병상을 만들고, 방호복을 입고 환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장면에선 숙연해졌다.

14년차 간호사인 안애리 한림대학교의료원지부 부지부장은 “저희 일하는 걸 이렇게 디테일하게 표현한 연극은 없었다. 코로나19로 가족이 사망했기 때문에 병상 부족 사태를 겪은 작년 12월이 떠오르기도 하고 힐링도 됐다”고 말했다. 3년차 간호사 김찬빈씨는 “연극에 현재 상황을 잘 접목시켜서 유쾌하면서도 슬프게 그렸다”면서 “심정지가 온 코로나19 환자를 살리려고 굉장히 오랫동안 CPR을 하는 장면에서 울림이 있었다”고 말했다. 1년차 간호사 배한나씨는 “의료인들의 마음을 잘 대변한 것 같아 위로받았다”며 “신규 간호사가 자책하고, 다들 (여러 요인으로)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을 표현한 장면이 와닿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간호사 면허를 가진 사람은 40만명, 이중 의료현장에서 활동하는 간호사는 절반인 20만명 뿐이다. 인구 1000명당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9)보다 적은 4.2명이다. 열악한 노동환경 탓에 많은 간호사들이 현장을 떠난다. 간호사 1명이 15명 안팎의 환자를 보는 현실이다.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앓는 ‘코로나 우울’의 확실한 치료제는 노동환경 탈바꿈이다. 이들은 “말 뿐인 위로는 필요없다”며 정부의 의지 있는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기사원문: https://www.khan.co.kr/national/health-welfare/article/202111101547001#csidxb327171953181fa850998847263dad9

노도현 기자 (E: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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